
영산포구
역사
조선시대 동안 영산포는 호남 지역의 조세 수취 및 농산물 유통 거점으로 기능했습니다. 영산강의 수로망 중심에 위치해 쌀과 같은 주요 작물들이 이곳을 통해 하류로 운송되었습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영산포는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는 그 중요성이 급증하였고, 나주의 비옥한 평야는 일본의 농산물 수탈 정책의 핵심 대상이 되었습니다. 영산포는 쌀을 비롯한 생필품의 수출 통로 역할을 하며, 일본은 이 지역에 창고와 교통 시설을 확충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개발은 지역 주민에게 이득 없이 자원을 수탈한 상징으로 남았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철도와 도로 운송의 발달로 수상 운송은 쇠퇴했고, 1970년대 영산강 하구둑이 설치되면서 강 하구가 막혀 무역항으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종료되었습니다.
비록 더 이상 붐비는 항구는 아니지만, 나주시는 내륙 등대와 선착장을 보존하고, 고려시대 황포돛배를 재현한 체험 프로그램과 안내 표지판을 설치하여 관광 명소로 꾸몄습니다.
영산포 등대
영산포에는 한국 유일의 내륙 등대인 영산포 등대(지도)가 있습니다. 1915년 일제강점기에 건립되어 영산강 내륙 수로를 항해하는 선박의 길잡이 역할을 했으며, 수위 측정을 위한 기능도 담당했습니다.
(등대 측면을 살펴보면 홍수 시 강 수위를 측정하던 눈금 표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등대는 쌀, 생선, 김 등의 물자가 황해까지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운반되도록 돕는 핵심 역할을 했습니다.
1989년 본래의 기능은 종료되었지만, 나주시는 이 등대를 문화유산으로 보존하고 관리하고 있습니다.
현재 방문객들은 영산강 둔치에서 등대를 조망할 수 있으며, 강가 선착장까지 내려가 가까이에서 볼 수도 있습니다.
황포돛배
황포돛배(지도)는 고려 시대 영산강 무역망의 핵심 교통 수단이었습니다. 노란 돛이 특징인 이 전통 배는 나주의 비옥한 들에서 생산된 쌀과 민물고기를 황해로 실어 나르며 강을 따라 무역로를 형성했습니다.
돛과 조수 흐름을 이용해 강의 물살을 따라 이동할 수 있도록 설계된 황포돛배는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내륙과 해안을 연결했습니다.
현대에 들어 나주시는 이 상징적인 배를 복원하여 관광객들이 직접 영산강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재현된 황포돛배는 약 50분간의 강 투어를 제공하며, 승객들은 영산강의 잔잔한 물결과 주변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홍어의거리
영산포 남쪽에는 홍어의거리(지도)가 있습니다. 이곳은 암모니아 향이 강하게 풍기는 발효 홍어, 홍어회로 유명합니다. 종종 정화조 냄새에 비유될 만큼 강한 향으로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쉽지 않은 음식이지만, 나주를 포함한 호남 지역에서는 지역적 자부심이 담긴 음식으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홍어의거리는 수많은 홍어 전문점과 가게들이 늘어서 있으며, 오랜 시간 축적된 발효 기술을 바탕으로 홍어를 손질하고 제공합니다. 과거에는 해안에서 내륙인 나주까지 홍어를 운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효가 이루어졌고, 이 우연한 발견이 이후 특별한 음식 문화로 자리 잡았습니다.
거리에서는 삼합—홍어회, 돼지고기 수육, 묵은지—을 함께 즐길 수 있으며, 각각의 강한 맛이 서로를 보완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발효 홍어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이 독특한 미식 체험은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식사 외에도 홍어의거리는 전통과 이야기가 살아 있는 장소로, 미식가와 여행자 모두에게 특별한 인상을 남깁니다.
일제강점기 창고
홍어의거리를 지나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면, 일제강점기 초기에 지어진 일본식 창고들이 줄지어 있습니다.
이 창고들은 나주평야에서 수탈한 쌀과 생필품을 보관하던 곳으로, 영산강을 통해 일본으로 반출되는 물자 운송의 거점 역할을 했습니다.
두꺼운 벽과 견고한 목재 구조로 설계된 창고들은 무거운 저장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어진 것이 특징입니다.
오늘날 일부 창고는 카페, 갤러리, 지역 상점 등으로 재탄생했지만, 아직 보수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건물도 있어, 일제의 수탈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