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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금대

새재 자전거길
충주의 강변에 자리하고 깊은 역사를 간직한 탄금대 공원에 대해 알아보자.

탄금대 (지도)는 대문산 (지도; 107m) 정상에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도심을 흐르는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충주시의 중심에 있다.

이곳은 두 가지 역사적 사건으로 유명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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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륵의 낙원

탄금대 공원의 바위와 소나무는 500년대의 전설적인 음악가 우륵을 끌어들였다. 그는 바위에 걸터앉아 남한강을 바라보며 전통 현악기인 가야금을 뜯어 연주했다. 가야금은 치터처럼 손가락으로 뜯어 연주하는 한국의 악기다.

삼국 시대에 우륵은 고구려(기원전 37년~668년)의 몰락과 신라의 부상을 예견했다. 그래서 신라의 왕들은 그를 당대 최고의 음악가로 인정했다.

신립의 열두 번 왕복

1592년, 일본조선(1392~1897)을 침략해 임진왜란(1592~1598)이 발발했다.

남동부의 부산에서 출발한 일본군은 북쪽으로 진격하며 마을과 정착지를 모조리 초토화했다.

문경새재를 넘은 일본군은 한반도 중앙에 위치한 충주시 (지도)에 이르렀다.

1592년 6월 7일, 궤멸된 남부 군이 북부에서 온 지원군과 합류해 충주 평야에서 일본군과 충주 전투를 치렀다. 이 전투에서 패하면 일본군은 조선의 수도인 한성(서울)까지 곧장 진격할 수 있었다.

조선군 총사령관인 신립 장군은 탄금대 공원의 대문산 절벽에 자리했다. 그는 전장을 내려다보며 병사들을 격려하고 적군에게 활을 쏘았다.

신립은 명중률을 높이기 위해 대문산 절벽을 오르내리며 활시위를 남한강 물에 담갔다.

노련한 일본군과 우세한 화포 앞에 지친 조선군은 대패했다. 신립은 8,000여 병력을 거의 모두 잃었고, 패전을 부끄러워한 그는 남한강에 몸을 던졌다.

오늘날 탄금대 공원에는 신립 장군을 기리는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가 충주 전투 중 활시위를 적시기 위해 오르내렸던 절벽은 이제 열두대라 불리는데, 그가 활을 담그기 위해 열두 번이나 왕복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탄금대에는 문화관과 조각공원, 체육 시설 등도 마련되어 있다.